절대군주와 타이 사회 Down UK
- eedyi81
- 2020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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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군주와 타이 사회 Down
절대군주와 타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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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적 왕권: 신격화된 데바라자 왕권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
람캄행 왕 시대 ‘포쿤’의 개념에 포함되어 있는 불교적 왕권은 수코타이 시대 말기인 리타이(Lithai 재위 1347-1368) 왕 때 보다 구체적인 성격을 띠고, 아유타야 시대(1351-1767) 이후 태국 왕들의 왕권에서 제도화되어 보다 명백한 형태를 취한다. 리타이 왕은 종종 “마하탐마라차(Mahathammaracha) 1세”라고도 불리는 그 칭호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강한 불교적 성향을 지녔던 인물로 보인다. ‘마하탐마라차’는 상좌부(上座部 Theravada)불교 경전언어인 팔리(Pali)어의 ‘마하 담마라자’(mahā dhammarāja)에서 파생한 것으로, ‘불법(佛法)에 입각한 위대한 왕’을 뜻한다. 그는 이미 왕자 시절에 불교의 우주론인 ꡔ뜨라이부미까타ꡕ(Traibhumikatha 三界論)를 쓸 정도로 불교에 깊은 관심을 지녔다. Griswold, A. B. and Prasert Na Nagara(1975), op.cit., p.50.
1361년에 세운 비문에 의하면, 그는 불교경전 총체인 삼장(Tripitaka 三藏) 가운데 특히 율장(Vinaya 律藏)과 논장(Abhidhamma 論藏)을 공부했으며 10가지 왕으로서의 덕목에 합당한 통치를 했다.
그러나 동일한 비문은 그가 1349년에 시바(Shiva) 신상과 비슈누(Vishnu) 신상을 “모든 수도자들과 브라만 승려들이 영원히 경배할 수 있도록” 한 브라만 사원에 세웠다고 전한다. Griswold, A. B. and Prasert Na Nagara(1973). `The Epigraphy of Mahādharmarājā I of Sukhodaya,` Journal of the Siam Society, Vol. 61, Pt. 1, pp.137-138.
그리스월드와 쁘라섯 나 나콘은 리타이 왕이 이 시점에 힌두교 컬트를 도입한 것은 자신의 등위 후 부왕인 러타이(Loethai 재위 1298-1347) 때 상실된 수코타이 왕국의 영광을 부활시키고 왕권과 강력한 정부를 내세우는 데 이념적 바탕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고 해석한다. ibid.,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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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절대군주와 타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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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절대군주와,타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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