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올립니다 위진남북조시대~수당시대 자료 BA
- eedyi81
- 2020년 1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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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올립니다 위진남북조시대~수당시대 자료
인문 올립니다 위진남북조시대~수당시대
[인문] 위진남북조시대~수당시대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위진남북조시대~수당시대
1. 위진남북조시대의 동·서관계
· 3~7C 초, 중국측의 혼란(≒5호16국위진남북조시대)으로 적극적인 서역경략이 불행 → 오아시스 제국은 미증유의 번영을 이룸 ↔ 중국과의 관계가 완전 단절된 것은 아님 - 발굴문서를 통해서 확인.
1) 화북지역 이민족국가의 서역진출
· 서진·전량의 서역진출
- 전량 : 누란지방에 영향력이 미침. 전량王 장준의 고창군 설치(329)-투르판
* 고창군은 전량 멸망 後, 한대이후의 서역 둔전병과 중원 혼란시의 유민이 모여 한인왕국인 고창왕국을 건설(449-640). 640년, 당에 멸망되기까지 타림분지의 유일한 한문화지대로 번영을 누림.
· 전진 여광(후에, 하서지역에서 後凉 건국)의 서역경략(382~383) : 정예군 7만으로 구차를 공격. 명승 구마라습(구마라십-대승불경 역경)을 초빙함.
· 북위 만도귀의 서정(445~448) : 선선(누란)지역 공략. 북위 효문제시, 국고에는 서역의 진기한 보화가 넘쳤다고 전함.
· 북위 태무제의 양주토벌(439) : 3만여戶를 수도 평성으로 이주하는 가운데 상당수의 이란계 Sogd상인이 있었다고 함 - 당시 서역과 하서지역 오량(전·후·서·남·북량)과의 중계무역이 번창했음을 시사.
2) 서역 오아시스 제국의 번영
· 오아시스제국들은 독립왕국을 형성·번영기를 맞이함 : 오늘날 발견되는 유적과 유물은 대체로 이 시대의 것(3~7C 초)이 중심.
· 대표적인 국가 : 서역 북도의 고창과 구자(쿠차), 남도의 우전(호탄)과 선선(누란). 특히, 쿠차와 호탄의 유물 - 서방계열 문화의 영향이 강함.
* 구자(쿠차) : 崇佛정책으로 쿠차 주변에는 동굴사원이 多 → 이란풍의 벽화와 소상(진흙으로 만든 인형)들이 多 - 불교미술사에 귀중한 자료.
* 우전(호탄) : 연옥(軟玉)의 명산지·견직물과 모직물도 유명. “견과 玉의 나라”라 칭함. 많은 사원유적이 발굴.
* 선선(누란) : 고명-‘누란’. 서역남북도의 분기점으로 번영을 누림 ↔ 흉노와 한의 주요 분쟁지역. 사라진 고대 도시-잦은 외침과 수로의 변경.
· 누란의 존재확인 : BC 176년, 모돈단우(묵특선우)가 한 효문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누란·오손의 장악을 전하는 가운데 최초로 역사에 등장.
- 한의 서역경략으로 점령당한 뒤, 선선으로 개명하고 한의 속국이 됨.
- 왕망·후한 초, 주변 오아시스국들을 복속하면서 전성기를 누림(Lop Nor ~ Niya)
· 누란·Miran·Niya 등의 유적지 : 서방풍의 유물들이 다수 발견.
* Niya 유지 : 최다 유물이 출토. 목간과 피혁에 씌어진 카로슈티(Kharo??h?)문서의 출토는 당시 타림분지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
· 문서에 근거하면, 불교가 매우 번창하고 많은 승려(약 4,000명)가 있었고, 승려들은 처자를 거느리고 노예를 부리며 호화생활을 유지 → 불교의 귀족성을 반영
☞ 5호16국 위진남북조시대 화북 이민족정권과 서역간에는 지속적으로 정치적·경제적 관계가 유지 ↔ 중원왕조(동진·송·제·양·진)의 서역에 대한 영향력은 정치적·지리적 원인으로 미미한 수준에 그침.
2. 불교의 동방전래와 입축승에 의한 동서 문화교류
1) 불교의 동방전래 : 여러 개의 설이 존재
· 진시황 33년(前 214) / 전한 애제 원수 원년(前 2년) / 후한 명제 영평 8년(후 65) / 2C 중엽 설(후한) 등.
· 현재,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은 기원전후 하여 중국인이 불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점
- 기원전후에 한의 사신이 현재의 아프카니스탄 남부 칸다하르까지 왕래 : 이곳에서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최전성기를 누렸던 아소카왕(BC 268~232)의 비문이 발견 → 중국인은 기원전에 불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
2) 불교의 전파
· 수용 원인 : 한역경전과 불교신봉을 필요로 하는 정치적·사회적 현실(후한말~5호16국위진남북조시대)에서 연유.
· 후한 명제(67), 천축인 섭마등 ? 축법란-불경을 갖고 낙양에 와 사십이위경을 역경하면서 불교가 전래
- 최초의 불교 사찰 백마사(백마사)가 낙양에 건립.
- 초기 불교 : 율법을 존중하는 소승불교. 동진 이전-소승불교의 경전이 주로 역경
· 2C 중엽 후한 환제, 월씨의 지루가참(147) ? 안식국의 안세고(148)가 입국. 대승경전 24권·소승경전 40권을 각각 역경 → 불교발전에 큰 기여.
- 엄부조 : 안세고의 불제자. 중국 최초의 한인 출가 승려-기록, 역경에 종사.
* 한대 불교의 성격 :
· 초기 : 상류 지식계층에서 주로 신봉. 대승·소승불교의 구별 없이 수용.
· 도교적 성격이 농후 : 불교교리 ≒ 노자의 무위자연사상과 관련시켜 이해. 부처·老子를 함께 모심 - 노자 = 부처 전설
· 불교의 본격적인 발전시기 : 5호16국 위진남북조시대. 불교사상의 연구시작 - 4C 초, 5胡의 남침과 동진시대
3) 불교의 발전과 동아시아 불교문화권의 형성
1] 불교발전의 원인
a. 윤회사상과 인과응보에 바탕을 둔 불교적 교리가 전란으로 불안했던 남북조 시대의 지식인과 일반민중의 고뇌와 갈등·현실생활의 절망감 및 죽음과 사후내세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서 해방시켜 줌으로써 불교발전의 사회적 기틀을 마련함.
b. 불교의 주술적 기능을 권력유지와 백성통치의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했던 권력자(胡族군주) · 귀족계층의 보호와 지원.
· 전진-부견(?堅), 後凉-여융(呂隆), 後趙-석호(石虎), 後秦-요흥(姚興: 구마라습의 역경사업 후원자), 북위-효문제 ? 선무제, 양(梁)-무제.
- 胡族군주 모두가 불교를 장려한 것은 아님 : 北魏 太武帝, 北齊 武帝, 唐 武宗의 廢佛사건 = ‘3무의 법란’
· 주술적 기능 : 국가장래·전쟁에 대한 예언, 질병의 치료, 농사의 풍흉 등 - 서역승 불도징(佛圖澄)
북조(北朝)정권의 통치수단 : 한인(漢人)을 통치하는 도구의 하나로 이용. “융신(戎神=부처)”으로 이민족 정권이 호감을 갖고 적극 수용.
c. 호국불교(護國佛敎)적 성격
[문서정보]
문서분량 : 5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인문 올립니다 위진남북조시대~수당시대
파일이름 : [인문] 위진남북조시대~수당시대.hwp
키워드 : 인문,위진남북조시대~수당시대,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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