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천의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의의 보고서 QI
- eedyi81
- 2020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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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의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의의 보고서
무심천의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의의
무심천의 명칭과 설화 무심천의 명칭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무심’이란 어휘에 얽힌 역사성과 의미와 더불어서 언제부터 그런 명칭이...
무심천의 명칭과 설화
무심천의 명칭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무심’이란 어휘에 얽힌 역사성과 의미와 더불어서 언제부터 그런 명칭이 사용되었는가로부터 그 뜻에 대한 해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장들이 많은 분들에 의하여 제기된 바 있다. 명칭 문제는 단순히 이름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양상이나 시대적 사상과 언어적 사용법칙 또는 역사적 의미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깊은 논의가 필요한 중요한 문제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간략하게 명칭과 어원 그리고 역사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명칭과 어원을 따로 떼어서 논할 수 없으므로 함께 논의하면서 그 역사적 변천과정을 고찰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지금의 무심천은 과거엔 대교천(大橋川)이었다. ꡔ新增東國輿地勝覽ꡕ 청주목(중종 25년 1530년)의 다음 기록은 당시의 공식적인 것이었다. ‘大橋川 在州南一里 原出赤峴 流入吳根津 大橋 卽情盡院前橋’(대교천은 청주 남일리에 있는데 적현에서 시작하여 오근진(오근장 부근의 나루)으로 흘러든다. 대교는 정진원(원은 숙소의 일종임) 바로 앞에 있는 다리다.)
앞으로 대교와 대교천에 관한 실증적인 연구를 통하여 대교의 건립연대와 대교천의 명칭 및 어원 문제를 정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대교라함은 뒤에 살펴볼 남석교를 말하는 것으로 대략 1500년대의 기록에서부터 등장하는 공식명칭이었다. 언제 남석교가 놓여졌는가에 대한 점 역시 논란이 있으므로 실증적인 연구가 필요하지만 최소한 남석교 때문에 대교천으로 불렸으리라는 점만은 분명하다.김진식, “무심천의 어원 고찰” ꡔ개신어문연구ꡕ 13집. 개신어문학회,1997. p.82.
그러니까 문헌에 대교천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시대 이전에 남석교가 건립되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겠다. 남석교의 건립 연대의 확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아주 중요하다.
[문서정보]
문서분량 : 18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무심천의 역사적 가치와 문화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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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 무심천의,역사적,가치와,문화적,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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